ㅣ시행 만 7년, 시장 순기능 위한 조건은?
‘창호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는 탄생 당시부터 창호 시장에서 아니 건축 시장에서 빅이슈였다. 제도 정립 과정에서는 말도 탈도 많았다. 대기업군 업체를 중심으로 대부분 순조롭게 제도에 발맞춘 제품개발을 진행했지만, 일부 중소업체들은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시행 이후 만 7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제도의 효용성과 활용성을 높이는 것이 숙제로 남아있다.
지난 2012년 7월, 창호시장의 핫이슈라고 할 수 있는 ‘창호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이하 창호 등급제)’가 본격 시행되었다. 당시 업계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며 제도 시작부터 많은 진통을 겪은 가운데서도 대기업군 업체들부터 등급 제품을 늘려나가며 제도 안착의 서막을 알렸다.
대기업 브랜드, 대리점 중심 유통구조
국내 PVC 창호시장은 대기업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장이다. 때문에 태생적으로 대기업의 그늘에 가려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후발주자들은 제품의 기능이나 단가 등에서 대기업 제품을 답습했고,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시장을 공략해 나갔다.
계약 규모가 큰 특판시장을 대기업이 장악하면서 자연스레 시판시장은 중소기업의 몫이었다. 건축경기의 부침으로 일부 대기업이 시판시장 공략도 추진했지만, 전반적으로 대기업군 업체들은 매출 규모가 큰 특판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또한, 대리점 중심의 유통 체제도 특징이다. 본사와 대리점 간 역할이 분담된다는 측면은 긍정적일지 모르지만 시장 상황에 따른 대리점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 대리점 지원책의 한계 등은 단점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본사가 가공 및 시공을 직접하지 않아 애로점이 생기기도 했다.
유통 가격 책정과정에서도 대기업의 지배력은 강했다. 대기업 브랜드의 가격에 따라 중소브랜드 단가가 책정되었고, 대기업 브랜드의 판매가 상승은 중소기업의 판매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후 시판시장이 성장하면서 100억원대 이상 매출로 성장한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판매가 조정의 영향없이 독자적으로 판매가를 높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창호 등급제는 늦은 감도 있었고, 준비가 미흡한 점도 없지 않았다. 실제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는 업체들의 주도로 제도가 정립되었다기보다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건 정부가 주도했기에 산업계의 의견 통합과정이 쉽지 않았다. 창호 등급제 기틀을 마련한 참여자 중 현업 종사자가 일부 업체에 한정되었다는 점은 아쉬웠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시행 초기 어려움 속 제도 정착
창호의 면적에서는 유리의 비중이 높지만 창호 등급을 획득하고, 관리하는 대상은 제도 시행 초기 대부분 프로파일 생산업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유리 생산업체는 KCC와 한국유리공업 단 두 곳뿐이며, 이들의 판유리를 공급받는 대리점들은 유리만 가공해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이었다. 물론 지금은 창호 생산라인을 갖춘 유리가공업체들도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주체가 등급을 획득하고, 그 제품을 관리하는 것이 옳다는 분위기 속에 대기업이 속해 있는 PVC 또는 알루미늄 압출업체들이 등급모델을 확보해 나갔다”고 전하기도 한다.
때문에 창호 등급제 시행 초기 중소업체들은 등급모델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창호 등급제 시행 초반에 열관류율이라는 단어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창세트 관련 시험기관도 시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한 업체는 등급을 받는데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하지만, KOLAS 인정을 바탕으로 자체 시험소를 갖춘 대기업군 업체들은 순조롭게 제도에 대응했다. 현재는 시험기관이 급증하고 자체 KOLAS 인정 업체도 추가되면서 시험 정체가 상당부분 해소되었지만, 대기업군 업체와 중소업체와의 제품개발역량, 시험설비 등의 인프라 차이는 여전하다.
업계·소비자·정부 ‘WIN-WIN’ 방안 마련해야
창호 품목을 포함한 창호등급제는 자원 수입국인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도이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제도를 시행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사용하는 주체와 제작하는 주체가 모두 함께 ‘WIN-WIN’할 수 있어야 시장에서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창호 분야의 각각의 주체가 제도 시행으로 인해 괄목할 만한 이득이나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때문에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본다. 타 제품도 마찬가지지만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의 목적은 등급 외의 제품 생산을 억제하고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하지만 창호 등급제의 경우는 업계 관계자 외 내용 접근도 어렵고 관심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불특정한 일반인에게 ‘창호 등급제를 아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10명 중 8~9명은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다. 앞으로 리모델링 시장이 확대되면서 일반소비자들의 건축자재 선택 폭이 넓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창호 등급에 대한 일반소비자의 인식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숙제로 부각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일반소비자들이 난방비와 전기료를 고려해 고등급·고효율 창호를 선택해 설치하고, 창호생산 및 제작업체들을 소비 성향에 따른 다양한 제품군을 공급해 적절한 수익을 가져가며, 정부는 이를 통해 자원 수입 절감, 환경 개선 등에 효과를 내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이하 쓰레기 종량제)’를 시행한 이후 쓰레기를 버리는 주체가 ‘배출량=지불’을 인식하면서 쓰레기 배출량이 줄고 정부에서도 쓰레기 발생량과 매립비를 줄이면서 세금을 아끼는 효과를 보았다”며 “창호 분야 등급제 역시 등급 제품 사용에 대한 이점을 소비자에게 명확하게 인식시킬 수 있어야 제도를 시행하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집에는 새시 교체 공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물어본다. 당신의 집에는 어떤 종류의 몇 등급의 제품이 시공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