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 듯 외국인 듯, 현재인 듯 과거인 듯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글/사진 김수진 여행작가
번화한 이태원 거리에서 이태원119안전센터를 끼고 들어서면 이태원의 숨은 명소 ‘우사단길’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보광초등학교 앞 양 갈림길에서 왼쪽 우사단로10길을 따라 본격적인 우사단길 여행을 시작해 본다.
우사단길 초입은 파키스탄, 터키, 이집트, 레바논, 인도 등지의 음식점과 아랍어로 적힌 간판, 히잡과 터번을 쓴 이방인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가 짙다. 1976년 국내 최초로 개원한 이슬람 성원인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이 이국적인 정취에 정점을 찍는다.
이슬람 성원이 있다 보니 주변에 할랄푸드 전문점이 많다. 할랄푸드는 이슬람교도에게 허용된 음식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엄격한 기준을 거치기 때문에 최근에는 종교적인 색채를 떠나 건강식품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이드’와 마칸‘과 같은 할랄인증 한식 전문점도 있다. 우리나라 여행 중 한식을 맛보고 싶은 이슬람교도들도 이곳을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국적인 할랄푸드를 맛보고 싶다면 인도식, 이집트식, 터키식을 추천한다. 이중 터키 음식 전문점 ‘케르반카페’는 주인장이 터키에서 가져온 장식품과 타일로 꾸민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음식메뉴로는 달콤한 터키 디저트와 차, 파니니케밥 등이 있으며, 특히 터키의 대표 디저트 바클라바가 인기다. 견과류를 넣은 달짝지근한 페이스트리로, 오리지널, 피스타치오, 초콜릿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외에도 탄두리치킨, 커리, 난 등을 맛볼 수 있는 파키스탄 음식 전문점 ‘팍인디아레스토랑’이 있다.
노스탤지어 감성 ‘챔프커피’‧‘오토’‧‘음레코드’
우사단길의 또 다른 매력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한국적 정서와 분위기에 있다. 오래된 집과 골목이 오밀조밀 이어진 이 일대는 지난 2003년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나 개발 사업이 지연되면서 옛 동네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는 젊은 예술가나 청년 창업자들이 우사단길로 들어와 개성 넘치는 공간을 하나둘 만들어가더니, 지금의 우사단길이 형성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가게와 공방이 들어섰다. 반복된 부침 속에서도 꾸준히 이곳을 지키고 있는 ‘챔프커피’와 ‘오토(OTTO)’가 대표적이다. 우사단길 초창기 멤버인 ‘챔프커피’는 외관이 옛날 쌀가게이나 구멍가게를 보는 듯 정겹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다 들러 삼삼오오 담소를 나눴을 법한 공간이다. 실제로 챔프커피는 우사단길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단골이든 뜨내기손님이든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다양한 얘기가 오간다. 길을 잘못 들어 후진하다가 이 동네를 발견하고 눌러앉았다는 챔프커피의 탄생배경부터 챔프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까지 입담 좋은 주인장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챔프커피 근방의 ‘오토’는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등 여러 매체에서 소개된 김밥 가게다. 로메인과 고추냉이소스가 들어가는 고추냉이김밥이 유명하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두루 좋아할 맛으로 소문난 이곳은 각국에서 온 손님으로 가득하다. 야외테라스도 매력적이다. 볕 좋은 날 우사단길이 내다보이는 자그마한 테라스에 앉아 김밥을 먹어보자. 인생 김밥으로 남을 운치와 맛을 선사한다.
우사단길 하이라이트는 도깨비시장 쪽 ‘음레코드’에 숨어있다. 바이닐(LP) 문화를 쉽고 편하게 접하는 음레코드는 음료나 맥주를 마시며 LP와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구입도 가능하다. 빈티지하면서 아날로그적 분위기가 돋보여 유명 가수들이 화보를 촬영하러 오기도 한다. 옥상은 멀리 남산서울타워부터 가까이 우사단길 도깨비시장 비닐 천막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우사단길을 품은 서울이 아득하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우사단길 진수를 제대로 맛보는 순간이다.
끝없는 매력 이곳, 이태원
이태원의 특색 있는 길을 더 둘러보고 싶다면 이태원 앤틱가구거리로 가자. 미군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내놓은 가구를 사고팔던 데서 유래해 지금은 국내 대표 앤티크 가구 매매 거리로 자리 잡았다. 클래식하고 고풍스러운 가구와 소품을 구경하노라면 유럽 거리를 걷는 듯 하는 기분이 든다.
이태원의 빈티지한 매력은 ‘바이닐앤플라스틱(VINYL&PLASTIC)’에서도 이어진다.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이곳은 LP, CD, 카세트테이프가 만드는 아날로그 사운드로 가득 메워진다. 1층은 주로 LP가, 2층은 CD가 전시‧판매되고 있으며, 곳곳에 턴테이블과 카세트플레이어, CD플레이어 등이 비치되어 있어 음악 감상에도 최적이다. 아날로그 음악이 친숙한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디지털 음원에 익숙한 신세대에게는 신선한 자극을 준다.
맞은편 골목에는 보물 같은 예술 공간, 산성미술관 ‘리움’이 있다. 이곳에 도착하면 각기 다른 세 건축물이 어우러진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축계 거장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가 설계한 건물이 한곳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다가온다. 국보와 보물,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 등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을 두루 소장하고 있다.
예술적 욕구를 더 채우고 싶다면 한남동에서 옥수동으로 이어지는 언덕길, 독서당로가 제격이다. 독서당로는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선보이는 디뮤지엄을 비롯해 개성 넘치는 갤러리, 복합 문화 공간, 카페, 맛집이 많이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