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작가가 수집한 옛 간판들
성수동에 위치한 레이블 갤러리에서 3월 19일부터 4월 24일까지 이영 작가의 ‘만물시장’ 전시가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는 사진 작품과 영상 작품이 출품되었다. 2007년도 이영은 청계천 일대의 상점들, 황학동의 만물시장 등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가게들에 걸린 간판을 촬영했다. 당시 그가 흥미롭게 본 간판은 함석판에 페인트를 묻힌 붓으로 쓴 상호명이다. 공들인 궁체풍의 서체로 쓰여진 한글 문자는 오래 전의 것들로써 어딘지 복고적인 내음을 진하게 풍겨주었다. 순수한 문자만으로 이루어진, 서체가 주는 필력의 맛이 응축된 당시 간판은 아날로그 간판의 매력을 온전히 가시화하면서 현판처럼 걸려있다. <보전당>, <쓰리스타상사>, <개미슈퍼>, <무아레코드>, <삼부화랑>등이 그것이다. 전적으로 간판만을 안겨주는 사진 속에는 오로지 문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는 도시의 간판, 간판에 쓰인 문자를 채집한 셈이다. 그것들은 이제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희귀한 간판들이다.
이영은 간판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간판들은 다분히 복고적인 간판들이고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된, 효율성과 합리성, 기계화의 대세에 의해 밀려난 손작업으로 이루어진 누추한 간판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간판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묘한 향수와 회고적 감정도 일고 문득 안타까운 추억들을 거느린다. 어린 시절 동네에 위치한 간판가게의 주인들은 대부분 저렇게 함석판으로 만든 바탕위에 페인트를 찍어 능란하고 익숙한 솜씨로 한글 서체를 멋들어지게 쓰곤 했다. 마치 혁필화를 그리던 이처럼, 옛날 장돌뱅이 민화가들이나 이발소 그림을 그리던 이들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간판도 나름의 역사가 있다. 나무판에 쓴 한자 간판을 지나 함석판에 페인트로, 이후 세련되고 멋진 디지털 간판 등에 이르기까지 변천을 거듭해왔다. 이영이 보여주는 간판들은 지난 시간대의 한국 간판의 이력의 어느 한 순간을 ‘훅’ 하고 안긴다. 거기에 잊고 있었던 누군가의 공력과 손의 힘과 소박하지만 나름 진솔했던 상호명이 주는 추억의 여운이 짙다.
국내와 해외의 전통시장에서 마주한, 손글씨로 써내려간 독특한 서체의 간판들의 모습은 이제는 조금 보기 힘든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손작업으로 이루어진 간판에 애정을 갖고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그것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뿐 아니라 작가는 최근 해외에서 만난 한글 간판 중 오류 많은 단순 번역이나 직역 혹은 알 수 없는 의도로 결합된 한글과 외국어의 조합을 사진으로 남겼다. 손글씨 간판들이 사라져가는 것들을 남기는 도큐멘트적인 특성의 작업이라 한다면, 최근 한글 작업들은 새로운 문화적 경계에 대해 흥미롭게 바라본 작가의 관점이 드러나는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사라져가는 것들에서 느껴지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진과 한글과 외국어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낯설고도 흥미로운 풍경을 레이블 갤러리에서 만나 보길 바란다.